[기고] 임인년의 ‘매트릭스’
빨간 약, 파란 약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까? 올해 우리 국민이 놓인 처지가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같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갈등은 불가피하다. 선택해야 할 대상에 관한 정보가 충분치 않은 경우엔 더 그럴 수밖에 없다. ‘가짜 뉴스’까지 가세해 어지러운 형국인 듯하다. 1999년 매트릭스 1편이 개봉되었을 때, 인공지능(AI)이란 영화의 소재는 허황된 공상처럼 여겨졌다.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AI는 이미 우리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오고 있다. 매트릭스라는 말도 다양하게 쓰인다. 매트릭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어떤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일 수 있다. 특정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시공간일 수도 있겠다. 가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매트릭스는 흔히 꿈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장자의 ‘나비의 꿈’은 상징적이다. 꿈속의 나비와 현실의 나, 어느 것이 진짜인가. 2022년 임인년, 우리는 검은 호랑이의 해라는 또 하나의 매트릭스로 들어간다. 올해 나의 꿈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매트릭스를 세계로 삼아 살아갈 것인가. 우리가 AI의 위력을 피부로 접한 것은 2016년 바둑 천재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결에서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면서다. 바둑을 둘러싼 오래된 꿈과 신화도 같이 사라졌다. 이세돌의 패배가 아니라 인류의 패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2022년의 시점에서 다시 ‘돌아온 매트릭스’를 감상하는 느낌은 23년 전과 아주 다르다. 23년 전에는 AI라는 소재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신선도가 떨어진 가운데, 기계와 인간의 전쟁 상황이 더 크게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선악 이분법의 대결 구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는 AI가 오용될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AI가 악용될 경우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상상을 초월할 수 있고, 신체적 안전과 정신적 안정까지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을 것이다. AI와 인간의 공존이 필요한 이유다. 영화에서처럼 AI 시스템이 사람과 똑같이 보이는 ‘가공 인간’을 무수하게 만들어낼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AI가 ‘살인 로봇’이 되어 세계를 정복하는 상황까지는 지나친 망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AI 전문가 스튜어트 러셀 교수가 우려하듯, 여론 조작의 가능성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AI로 만들어진 수백만 개의 ‘가짜 신분’이 여론 조작을 하게끔 설정되어 수십억 개의 댓글과 ‘좋아요’를 쏟아내며 정보와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바탕에 깔린 ‘기계(AI)=악, 인간=선’이라는 설정 자체도 일종의 매트릭스로 보인다. 모든 일에 양면이 있듯이, AI에도 오용과 악용의 부작용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좋게 쓰일 수도 있지 않은가. 좋은 기계, 나쁜 기계가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기보다는,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좋은 사례로는, 시리아 난민들의 심리치료에 활용되었던 AI 챗봇(대화하는 로봇) ‘카림(Karim)’이 거론되곤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카림이 개발된 것이 2016년이니까 지금은 훨씬 더 기술이 발달했을 것이다. 이런 AI를 무조건 악하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기계와 다른 인간다움의 가치는 무엇일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한데, 세계를 따뜻하게 하는 데 활용되는 AI가 늘어간다면, 말로만 공감을 떠벌이는 사람보다 기계가 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기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 사고’를 하는 인간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을 흑백 이분법으로 재단하면서 자기만 옳다고 강변하는 사고야말로 세계를 위협하는 매트릭스인 듯하다. 권력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배영대 / 근현대사연구소장기고 매트릭스 매트릭스 1편 기계적 사고 가운데 기계